여러분은 혹시 메달 색깔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걸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구아이링(에일린 구)을 둘러싼 중국 여론의 반전을 보면서, 스포츠가 때로는 얼마나 잔인한 무대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2022년 베이징올림픽 당시만 해도 "기회주의자", "돈 때문에 국적을 바꿨다"는 비판이 쏟아졌던 그녀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목에 걸자 중국 내에서 "명실상부한 중국의 영웅"으로 격상됐습니다. 성적이 좋으면 영웅, 부진하면 배신자라는 이 공식이 과연 정상일까요?
메달 하나가 여론을 뒤집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응원하는 걸까요
구아이링은 2월 22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4.75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차 시기에서 착지 실수로 하위권에 처졌지만, 2차 시기에서 94.00점으로 단숨에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갔고, 마지막 3차 시기에서 압도적인 높이와 화려한 회전 기술로 승부를 확정지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올림픽 통산 메달 6개라는 기록과 함께 하프파이프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불편하게 만든 건 경기 결과가 아니라, 그 이후에 쏟아진 반응들이었습니다. 중국 소후닷컴에는 "자신감 넘치는 소녀, 당신은 정말 최고다", "출생지로 영웅을 논하지 말자. 중국 대표로 출전하면 설령 메달이 없어도 응원해야 한다"는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중국 귀화는 현명한 결정이었다", "2030년 올림픽 우승도 기대한다"는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미국 시민권을 유지한 채 중국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는 이유로 맹비판을 받았던 선수가, 이번 성적 하나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겁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응원하는 걸까요? 선수 개인의 노력과 성장인가요, 아니면 국가의 메달 개수인가요? 만약 구아이링이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과연 중국 여론은 지금처럼 그녀를 영웅으로 칭송했을까요? 아마 다시 "돈 때문에 왔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었을 겁니다. 이게 바로 제가 불편했던 지점입니다. 메달이 선수의 능력을 증명하는 건 맞지만, 그것이 선수의 선택과 인생 전체를 판결하는 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봤습니다. 빅토르 안(안현수)과 린샤오쥔(임효준)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역시 각자의 사정으로 국적을 바꿨고, 그에 따라 원래 조국에서는 날선 비판을 받았습니다. 스티브 유(유승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역 의무를 기피하고 미국 국적을 선택하면서 그는 한국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됐고, 정부 차원에서 입국이 불허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비판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조국을 떠난 선택에 대해 원래 국가의 국민들이 실망하고 비판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살해 협박 같은 위험한 수위의 공격은 당연히 자제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선택을 무조건 인정하고 환영해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국적 선택은 개인의 자유, 하지만 비판을 감당하는 것도 선택의 일부입니다
구아이링은 미국 태생이지만 중국 국적을 선택한 뒤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녀는 최근 1년간 약 2,300만 달러(약 332억 원)를 벌어들였고,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누적 수익은 8,740만 달러(약 1,262억 원)에 달합니다. 저는 이 숫자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력 있는 선수가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이 숫자가 언론과 대중에 의해 "도덕 판결의 증거"로 활용된다는 점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니 선택이 옳다/그르다"는 식의 논리는, 결국 선수의 정체성과 삶을 재무제표로 환산해버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프레임이 스포츠를 더 건강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선수에게 "너는 늘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만 더 얹을 뿐입니다. 구아이링은 실제로 미국에서 신체적 폭행을 당해 경찰이 출동했고 기숙사 방을 도둑맞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J.D. 밴스 부통령은 "미국의 혜택을 받고 중국을 선택한 그녀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전 NBA 스타 에네스 칸터 프리덤은 그녀를 "배신자"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구아이링의 선택을 옹호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녀가 중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만큼, 미국에서의 비판 역시 그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조국을 버린 대가로 중국에서의 부와 명예를 얻었고, 반대급부로 미국에서의 비난과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국적 변경이라는 선택이 가져온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현명한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누군가는 "배신"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각자의 관점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신경 쓰이는 건, 이런 논란이 선수 개인의 삶보다 "국가주의적 소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선수를 응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듭니다. 그리고 성적이 좋으면 "국적은 상관없다"고 말하다가도, 흐름이 꺾이면 "조국을 버렸다"는 문장이 다시 튀어나옵니다. 저는 이런 이중 잣대가 결국 선수도, 팬도 불안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 사람으로서 안현수와 임효준이 다른 나라 유니폼을 입고 한국 선수들과 경쟁하는 모습을 봤을 때,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실망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한국에서 받았던 부당한 대우나 기회 부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구아이링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중국을 선택한 이유에는 분명 경제적 이득도 있었겠지만, 미국에서의 불안과 차별도 한몫했을 겁니다. 저는 이런 복합적인 맥락을 모두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원래 조국에서의 비판이 부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비판이 폭력이나 협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성적에 따라 여론이 180도 뒤집히는 건 건강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구아이링이 보여준 경기력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프파이프는 실수 하나로 끝나는 종목이고, 큰 무대에서 점수로 증명해낸 건 명백한 실력입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우리는 선수의 선택을 '충성'의 언어로만 해석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 선수의 국적을 두고 마치 국가 대리전처럼 감정을 쏟아내는 걸까요? 왜 "메달을 따면 영웅, 못 따면 논란"이라는 규칙이 당연해졌을까요? 이 질문을 덮어두면, 다음 선수에게도 똑같은 프레임이 반복될 겁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이기면 박수, 지면 돌"을 맞겠죠. 저는 구아이링의 금메달이 여론을 뒤집었다는 말이, 칭찬처럼 들리기보다 경고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스포츠를 사랑한다면, 선수의 실력을 응원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선수를 둘러싼 소비 방식도 같이 돌아봐야 합니다.
참고: https://m.sports.naver.com/milanocortina2026/article/108/000341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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