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년 시즌 내내 김혜성이 다저스 벤치에서 기회를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주전은 아니었지만 출전할 때마다 괜찮은 타율을 보여줬고, 특히 수비에서는 실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스프링캠프 초반 0.429라는 타율을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였습니다. 숫자는 분명 좋지만, 메이저리그에서 2경기 7타수 성적은 사실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김혜성 본인이 "감독님 말씀이 아니라 내 실력"이라고 말한 그 한 문장에서, 저는 이 선수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야구를 하고 있는지 정확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0.429 타율보다 중요한 건 변화구 대처
김혜성의 스프링캠프 초반 성적은 7타수 3안타 3타점 1득점으로 타율 0.429를 기록했습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변화구에 대한 대처가 확실히 좋아졌다"며 "스트라이크존 아래로 떨어지는 공을 무리하게 쫓아가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변화구'란 직구(fastball)가 아닌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궤도가 변하는 공을 의미하는데,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이런 변화구로 타자의 타이밍을 무너뜨립니다.
저는 KBO에서도 김혜성이 평균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던 걸 기억합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이영민 타격상까지 받았던 선수입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서는 작년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타격감이 식었다고 본인이 인정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선구안(plate discipline)'의 문제였다고 봅니다. 선구안이란 타자가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별하고, 자신이 칠 수 있는 공만 골라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김혜성은 비시즌 동안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완했다고 밝혔습니다.
로버츠 감독의 칭찬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하지만 김혜성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감독님 말씀이 아니라 내 실력"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참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칭찬은 선물이 아니라 청구서가 되기 쉽습니다. 칭찬을 받으면 기대치가 올라가고, 그 기대치를 못 채우면 곧바로 "그래서 개막전은?"이라는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김혜성은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습니다.
특히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참아낸 뒤 자신이 칠 수 있는 공만 골라 안타로 연결한 장면은, 작년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김혜성은 "빅리그에는 공 빠른 투수가 워낙 많다. 비시즌 동안 빠른 공에 계속 노출되려고 노력했고, 타이밍을 잡는 부분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건 훈련 메뉴가 아니라 불안과 싸운 시간의 기록처럼 들렸습니다.
개막전 2루수 경쟁 구도의 냉정한 현실

다저스의 주전 2루수 자리는 현재 공석입니다. 토미 에드먼이 발목 수술로 빠지면서 김혜성을 포함해 알렉스 프리랜드, 산티아고 에스피날, 미겔 로하스 등이 경쟁 중입니다. 로버츠 감독은 "좋은 선택지들이 많다. 김혜성도 그 경쟁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선택지'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경쟁은 실력만으로 결판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독이 무엇을 원하느냐'가 더 큽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개막전 선발은 단순히 "누가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비 안정성을 우선시할지, 타선 밸런스를 맞출지, 좌우 타자 매치업(matchup)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따라 '좋은 2루수'의 정의 자체가 달라집니다. 여기서 매치업이란 특정 타자가 특정 투수 유형(좌완, 우완)을 상대할 때의 유불리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좌완 투수가 많은 상대 팀과 시리즈를 치를 때는 우타자를 선호하는 식입니다.
저는 김혜성이 비시즌 동안 외야 수비까지 훈련한 점이 전략적이라고 봤습니다. 그는 "외야 수비도 많이 훈련하다 보니 타구 판단이나 스타트가 좋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팀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생존 전략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유틸리티 플레이어(utility player)'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뜻하는데, 이런 선수는 로스터(25인 엔트리) 생존율이 높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유틸리티는 "주전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될 위험도 있습니다.
김혜성은 작년 월드시리즈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지만, "팀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저는 이 고백이 참 좋았습니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유리한 문장만 고르기 마련인데, 김혜성은 "올해는 진짜로 팀 우승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부채의 언어로 말했습니다. 이런 자각이 있는 선수가 제일 무섭습니다. 칭찬에 취하지 않고, 변명으로 도망가지 않고, 다음 행동으로 가는 사람이니까요.
WBC 한일전 출전 의지와 캠프 공백의 딜레마
김혜성은 오는 28일 일본 오사카로 이동해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에 합류합니다. 로버츠 감독은 "자국을 위해 뛰는 건 대단한 일"이라면서도 "캠프 기간 함께할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이 한 줄이 참 현실적입니다. 국제대회는 선수에게 영광이고 팬에게는 설렘이지만, 구단에게는 '평가 과정의 단절'입니다. 특히 개막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선수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김혜성은 "그동안 대표팀에 가도 경기에 자주 나가지 못했다"며 "이번 WBC에서는 특히 한일전에 꼭 출전해 이기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애국심보다도 '내가 그 무대에서 서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느꼈습니다. 국가대표에 뽑혀도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길면, 그 영광은 사람을 들뜨게 하기보다 자존심을 조용히 긁습니다. 김혜성의 이 솔직한 욕망이, 저는 오히려 건강하다고 봤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걱정도 있습니다. 스프링캠프는 선수들이 몸을 만들고, 감독이 개막전 라인업을 구상하는 시간입니다. 김혜성이 WBC 기간 동안 캠프에 없으면, 다른 경쟁자들은 그 시간 동안 로버츠 감독 앞에서 계속 어필할 수 있습니다. 로버츠 감독이 "복귀 후 다시 면밀히 평가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건 "다시 처음부터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김혜성이 WBC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오히려 다저스 복귀 후 협상력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한일전 같은 빅매치에서 임팩트를 남기면, "이 선수는 큰 무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상을 당하거나 부진하면 돌아올 자리가 더 좁아질 위험도 있습니다. 국제대회 참가는 늘 이런 양날의 검입니다.
김혜성의 시범경기 초반 타율 0.429는 분명 좋은 신호입니다. 하지만 저는 숫자보다도, 김혜성이 자기 말을 지키려면 앞으로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참을 공은 참고, 칠 공은 치고, 수비에서 실수를 줄이고, 무엇보다 다음 날 또 야구를 할 수 있는 몸을 남기는 것. 메이저리그는 영웅의 무대가 아니라 생존자의 무대니까요. 김혜성이 말한 "내 실력"은, 어쩌면 홈런이나 타율이 아니라 그 생존의 반복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막전 2루수든, WBC 한일전 출전이든, 결국 답은 경기력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저는 그 증명을 해내는 선수가 결국 자리를 가져간다고 믿습니다.

참고: https://m.sports.naver.com/wbaseball/article/311/0001979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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