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평창 올림픽 때 임효준 선수를 응원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때만 해도 그가 중국 선수가 되어 우리와 경쟁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밀라노 올림픽에서 린샤오쥔이라는 이름으로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선수가 국적을 바꾸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가 "한국이 더 무서웠다"고 말했는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난이었을까, 성추행이었을까
2019년 진천선수촌에서 벌어진 일은 누구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당시 훈련 중 선수들 사이에서 장난이 오갔고, 임효준과 황대헌이 그 과정에 연루됐습니다. 목격자들은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다"고 증언했고, 일부 선수들은 탄원서까지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황대헌 측은 이를 동성 간 성추행으로 신고했고, 빙상연맹은 1년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당시가 조재범 코치 사건으로 빙상계 전체가 들끓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맹이 여론을 의식해 서둘러 칼을 뺀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이상하다고 느낀 부분은, 임효준이 사과하러 황대헌의 집까지 찾아갔는데 문조차 열어주지 않고 경찰을 불렀다는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해야 하지만, 동료 선수 간의 갈등을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몰고 갈 필요가 있었을까요. 결국 2020년 대법원은 "장난스러운 분위기였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목적이 아니었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문에는 황대헌도 여자 동료에게 먼저 장난을 쳤다는 내용까지 명시됐습니다.
그런데 이 무죄 판결이 나왔을 때는 이미 임효준이 린샤오쥔이 된 뒤였습니다. 법은 그를 무죄라고 했지만, 그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어디에 있었나
이 사건에서 가장 씁쓸한 부분은 책임져야 할 어른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진천선수촌장이었던 신치용은 훗날 "경고 정도로 끝나야 했다. 주변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사람들이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성백유 전 평창올림픽 대변인은 더 직설적으로 "책임지는 어른이 없었다. 대한체육회장, 지도자들, 원로들은 비겁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이 말들이 정말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선수들끼리의 갈등을 조정하고, 과도한 징계를 막고, 선수의 미래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어른들의 역할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쇼트트랙계 내부에서는 임효준이 특정 팀 계약을 거부한 것이 괘씸죄로 작용했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습니다.
쇼트트랙은 실력만큼이나 파벌과 관계가 중요한 세계입니다. 제가 이 종목을 오래 지켜보면서 느낀 건, 선발전만 통과한다고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훈련 환경, 팀 내부 분위기, 심지어 여론의 방향까지도 선수의 커리어를 좌우합니다. 임효준은 국가대표 자격을 가지고도 올림픽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에 내몰렸고, 사실상 선택지가 없었던 겁니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간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안현수는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스스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 임효준은 억울한 징계와 파벌 싸움 속에서 떠밀리듯 중국행을 선택했습니다.
중국이라는 선택, 그리고 그 무게
임효준이 중국을 택한 이유는 생활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고, 원한 것은 단 하나 올림픽 무대였습니다. 당시 어머니에게 남긴 "다른 나라에 가는 것보다 한국이 더 무서워"라는 말이 모든 걸 설명합니다. 그만큼 한국 빙상계가 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가 중국을 선택한 순간부터는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쇼트트랙에서 우리의 최대 라이벌인 중국이었으니까요. 제 경험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 번 조국을 떠난 사람을 용서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유승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군복무를 하겠다고 공언해놓고 미국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한국 입국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를 용서하지 않고 있습니다. 린샤오쥔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죄 판결을 받았고, 억울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아도, 중국 국적으로 올림픽에 나선 순간 많은 사람들에게는 "조국을 배신한 사람"으로 각인됐으니까요.
밀라노 올림픽에서 린샤오쥔은 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스타 대우를 받고, 팬들이 팻말을 들고 응원했지만, 결과는 냉정했습니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도 대회 내내 거부하다가 모든 일정이 끝난 뒤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8년이란 시간이 길고도 짧게 느껴졌다"는 그의 말에서, 얼마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남긴 질문들
린샤오쥔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선수의 귀화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쇼트트랙이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선수 보호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책임져야 할 어른들은 어디에 있었고, 왜 아무도 나서지 않았는지, 파벌 싸움과 괘씸죄가 정말 한 선수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강력한 것인지. 이런 질문들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당시 임효준에게 특정 팀 계약을 강요했다는 인사가 이번 밀라노 올림픽에도 버젓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더 씁쓸합니다.
저는 린샤오쥔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가 중국을 택한 것은 분명 아쉬운 선택이었지만, 그를 그 선택으로 내몬 것이 누구였는지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법원은 그를 무죄라고 했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그를 용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게 공정한 일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선수를 보호하고, 공정한 조사를 하고, 책임질 어른들이 나서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한, 제2, 제3의 린샤오쥔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또다시 "왜 떠났느냐"고 묻겠지만, 정작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느냐"는 질문은 회피할 겁니다. 이번 사건이 정말로 남긴 것은 메달이 아니라, 바로 그 불편한 질문들입니다.
참고: https://m.sports.naver.com/milanocortina2026/article/025/0003504685
댓글